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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logue

3. “It’s not your fault” – 굿 윌 헌팅(1997)

by orossiwithu 2025. 9. 21.

[ scene+logue ]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세 번째 장면은,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 속 “It’s not your fault” 장면입니다. 겉으론 거칠고 영리한 천재 청년 윌. 하지만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자기혐오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치료사 숀(로빈 윌리엄스)이 조용히 반복하던 말, “It’s not your fault.” 짧은 문장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치유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순간에 머물러 보려 합니다.

 

“It’s not your fault” – 용서가 시작되는 자리

1. 프롤로그 (Scene Drop)

영화 속에서 윌은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습니다.
친구 앞에서는 건방지고, 교수들 앞에서는 도전적이고, 연인 앞에서는 차갑게 벽을 쌓았죠.
그 모든 가면 아래에는 “나는 상처받은 존재”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바로 상담실.
숀이 윌의 과거 기록을 보고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엔 윌도 무덤덤합니다.
“알아요.”
하지만 숀은 같은 말을 반복하죠.
“It’s not your fault.”
그 말이 거듭될수록, 윌의 표정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마침내 그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어린아이처럼 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립니다.

 

짧은 몇 마디의 대사가 한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순간.
이 장면은 단순히 영화 속 치료 장면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2. 정지화면 (Freeze Frame)

이 장면을 정지화면처럼 떠올려 봅니다.
낡은 상담실, 빛바랜 책들, 벽에 걸린 사진들이 배경을 채웁니다.
숀은 차분히 서 있고, 윌은 불안하게 서성입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비춥니다.
처음에는 무표정과 방어.
그다음엔 주저하는 눈빛.
그리고 끝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이 모든 변화는 대단한 음악이나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반복되는 짧은 대사와 배우들의 눈빛에서 비롯됩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장면을 더 진실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속 깊이 숨겨둔 상처들이 떠오릅니다.
누군가가 단호하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줬다면, 더 일찍 치유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자신을 탓하죠.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용기를 냈다면.”

 

그런 마음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옭아매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오래될수록, 스스로 용서하기가 더 어렵다는 겁니다.

 

저 역시 제 안에 남아 있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네가 더 강했어야지.”
“너 때문이잖아.”
하지만 사실은 제 잘못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쉽게 손을 놓아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 장면의 “It’s not your fault”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꼭 필요한 선언처럼 들립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이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적 감동을 넘어, 철학적·심리학적 사유와 겹쳐집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을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평가와 판단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수용 속에서 성장한다고 말했죠.
숀이 윌에게 해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의 상처와 방어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철학적으로는 한나 아렌트의 ‘용서의 정치학’과도 연결됩니다.
아렌트는 인간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붙잡고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서는 단순히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풀어주는 행위라는 거죠.

 

문학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그의 주인공들은 죄책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파괴하다가, 어떤 순간 누군가의 한마디로 변화합니다.
굿 윌 헌팅의 이 장면 역시, “죄책감의 굴레를 깨뜨리는 언어의 힘”을 보여줍니다.


5. 여운 (Aftertaste)

〈굿 윌 헌팅〉의 “It’s not your fault”는 단순히 상담실의 한 대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위로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유 없이 끌어안고 탓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고통이 내 잘못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잘못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난 뒤, 오래도록 제 안에서 울리던 목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단순한 말이 왜 그렇게도 어렵게 들렸을까요?
아마도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마음속에 묵혀둔 상처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작은 치유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