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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logue

1. “O Captain! My Captain" – 죽은 시인의 사회(1990)

by orossiwithu 2025. 9. 20.

[ scene+logue ]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첫번째 장면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90)'의 엔딩씬 입니다. 바닥에서 발을 떼고,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들과 키팅 선생님이 눈으로 주고 받은 대화는 오래도록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이 장면에 머물러 봅니다. 

 

“O Captain! My Captain" – 바닥을 떠난 순간의 떨림

1. 프롤로그 (Scene Drop)

혹시 여러분은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 적이 있나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엔딩은 제게 그런 장면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 멈춰 앉아, 그 울림을 붙잡고 싶었던 기억이 있어요.

마지막 순간, 학생들이 하나둘 책상 위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키팅 선생님을 향해, 온 마음을 담아 외치죠.
“O Captain! My Captain!”

이 장면은 단순히 스승에 대한 존경을 넘어, 스스로의 시선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책상 위라는 작은 공간이 그들의 무대가 되었고, 그 무대에서 학생들은 어른이 정해둔 질서에 갇히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교실은 더 이상 평범한 교실이 아니라, 자유와 용기, 그리고 배움의 의미를 증언하는 장면이 됩니다.


2. 정지화면 (Freeze Frame)

이 장면을 정지 화면처럼 떠올려 보세요.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부드럽지만, 공기는 긴장으로 차 있습니다.
책상 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 학생들의 신발 밑창이 나무 표면에 닿는 소리, 그리고 조용히 들썩이는 가슴의 박동까지.

자리에 앉으라고 외치는 교장의 목소리와 얼굴엔 당혹감이 비치고, 키팅의 눈빛은 흔들리면서도 따뜻합니다.
학생들의 발끝은 두려움 속에서도 단단히 책상 위를 딛고 있습니다.
그 작은 떨림이 바로 이 장면의 핵심이죠.

책상은 원래 공부를 위한 물건이지만, 그 순간에는 자유를 향한 무대가 됩니다.
작은 높이의 차이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전환점으로 바뀌는 거예요.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제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가 조용히 있는 교실에서 혼자 목소리를 냈을 때,
온몸이 떨리면서도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였던 순간 말이에요.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이 장면은 늘 제 안에 작은 메아리를 남깁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올라섰던가?”

책상 위에 선다는 건 단순히 위치를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익숙한 바닥을 떠나 낯선 시선을 선택하는 용기이고, 다른 풍경을 마주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바닥에서 살아갑니다.
안전한 길을 따라가고, 정해진 규칙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죠.
하지만 그 길 위에서만 머문다면, 결국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낼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 삶 속 작은 책상들을 떠올려 봅니다.
회사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던 문제를 용기 내어 꺼냈던 순간,
친구에게 오래 감춰왔던 속마음을 고백했던 순간,
혼자 두려웠지만 제 목소리를 낸 순간.
그 모든 때가 제 인생의 책상 위였던 것 같습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이 장면은 철학자 니체의 말과 겹쳐집니다.
삶을 긍정한다는 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일이라고 했죠.
책상 위에 서는 건 바로 그 낯선 시선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몸짓입니다.

푸코의 권력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학교라는 제도는 규율을 통해 학생들을 길들이는 장치입니다.
그 속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오르는 건 작은 균열, 권력의 벽에 생긴 틈새입니다.
비록 그 균열이 세상을 무너뜨리진 않지만, 그 작은 틈이 공기를 바꾸고 희망을 스며들게 합니다.

문학적으로 보면, “O Captain! My Captain!”은 월트 휘트먼이 링컨을 기리며 쓴 시에서 온 구절이죠.
학생들은 그 시를 빌려 키팅에게 존경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합니다.
존경과 자기 선언이 겹쳐질 때, 장면은 더 큰 울림을 가집니다.

저는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기억을 지워도 결국 사랑이 남는다는 메시지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도 권위가 여전하더라도
용기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5. 여운 (Aftertaste)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진 않습니다.
학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교실 밖에는 여전히 권력이 기다리고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책상 위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 작은 몸짓이 남긴 떨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용기를 내야 할 순간에 불씨처럼 살아날 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SNS라는 교실, 회사라는 교실, 가족이라는 교실.
그 속에서 책상 위에 선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죠.
때로는 눈치를 봐야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용기 없이는, 진짜 배움도, 진짜 자유도 경험할 수 없을 겁니다.

책상 위에 선다는 건 단순한 반항이 아닙니다.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겠다는 조용한 선언입니다.
그 선언이 모여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올라섰는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같은 질문을 조심스레 건네고 싶습니다.
혹시 오늘 하루, 아주 작은 용기 하나를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책상 위에서 세상을 다시 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