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cene+logue ]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네 번째 장면은, 영화 <Brokeback Mountain(2006)> 입니다. 애틋함이 절규가 되는 순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과 에니스가 서로를 향해 내뱉은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당신을 어떻게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떠날 수 없는 마음, 단념할 수 없는 사랑. 그 고백은 사랑이 가진 가장 아픈 진실을 드러냅니다. 오늘은, 그 장면에 다시 머물러 봅니다.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고백
1. 프롤로그 (Scene Drop)
산의 바람은 차갑고 매서웠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부딪치고, 다시 끌려가듯 서로에게 돌아왔습니다.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사랑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도망치려 해도, 모른 척하려 해도, 마음은 늘 같은 곳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잭이 내뱉은 그 한마디 —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직역하면 “당신을 그만둘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지만, 한국 개봉판 자막은 “당신을 어떻게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였습니다. 짧지만 뼈아픈 문장. 그것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사랑이 가진 모순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집착을 압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영화 속 한 장면을 넘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마주한 감정의 언어처럼 다가왔습니다. 놓아야 하는데 놓을 수 없는 마음,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가장 흔히 반복되는 인간의 고백이기도 하니까요.
2. 정지화면 (Freeze Frame)
눈 덮인 산속, 차가운 공기 속에서 거친 호흡이 터져 나옵니다. 말다툼 끝에 고통스럽게 쏟아진 절규. 카메라는 두 사람을 둘러싼 풍경을 비춥니다. 웅장하고 자유로운 대자연은 그 자체로 해방을 상징하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그들의 사랑은 더 좁아지고 갇혀 있습니다.
이 장면을 정지화면처럼 멈추어 보면, 삶과 사랑이 늘 엇갈리고 충돌하는 아이러니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 에니스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시선, 사회의 규범, 스스로의 내적 갈등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도망치려 합니다.
- 잭의 목소리는 붙잡으려는 간절함 그 자체입니다. 그는 사랑을 포기할 수 없고, 사회의 금기를 뚫고라도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서로를 바라보지만, 같은 자리에 서 있지 못하는 두 사람. 그 사이의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상대를 향해 손을 뻗지만, 그 손은 끝내 닿을 수 없는 듯한 간극을 보여줍니다.
정지화면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얼마나 강렬한지 깨닫게 됩니다.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이 대사는 들을 때마다 내 안의 기억을 흔듭니다.
한때 너무 원했지만 끝내 가질 수 없었던 것들, 손에 쥐었지만 결국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잭의 절규는 단지 동성애적 사랑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불가능한 사랑과 욕망을 대변하는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가질 수 없지만 놓을 수도 없는 것, 그것이 인간을 가장 아프게 하지만 또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도 수없이 떠나고 싶었지만 끝내 놓지 못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 이미 끝난 관계를 붙잡고 싶었던 기억
-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꿈
-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떤 습관이나 욕망
이 모든 것들이 잭의 한마디에 겹쳐져 메아리칩니다. 결국 그 말은 ‘사랑의 언어’이자 동시에 ‘인간 존재의 언어’로 울려 퍼집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철학자 라캉은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고, 항상 다른 욕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기에 계속 살아 움직이고, 멈출 수 없기에 인간을 흔듭니다. 잭의 절규는 바로 이 라캉적 진실을 드러냅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장면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억압한 욕망의 초상입니다.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그들의 고통은, 결국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시대와 제도가 만들어낸 비극이었습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사랑할 권리를 주지 않았고, 그 금지는 곧 삶 전체를 갉아먹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단지 특정한 성적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멈추지 못하는 것’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관계, 누군가는 꿈, 또 다른 누군가는 지나간 기억에 묶여 있습니다. 영화 속 잭과 에니스를 바라보며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가?”
라캉의 말처럼 욕망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와 제도의 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랑과 욕망, 자유와 억압이 어떻게 충돌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5. 여운 (Aftertaste)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대사는 오래 남습니다.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 “당신을 어떻게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말은 포기하지 못하는 사랑의 고백이자, 끝내 풀리지 않는 상처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 때로는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 때로는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그 한마디는 그래서 사랑의 아이러니를 일깨웁니다. 사랑은 때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우리를 가장 깊이 가두기도 합니다.
여운은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그 질문은 사랑뿐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들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잭의 절규는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 속에서,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사랑은 우리를 울리고 웃기며, 가두고 풀어주며, 결국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합니다.
'scene+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 "This is me" – 대니쉬 걸(2015) (1) | 2025.09.25 |
|---|---|
| 5. "The sound that lingers" — 라디오 천국, Last Train Home (0) | 2025.09.23 |
| 3. “It’s not your fault” – 굿 윌 헌팅(1997) (0) | 2025.09.21 |
| 2. "The moment seizes us" - 보이후드(2014) (0) | 2025.09.20 |
| 1. “O Captain! My Captain" – 죽은 시인의 사회(1990) (0) | 2025.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