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ilo+scop] 철학적 개념을 렌즈 삼아 현대사회의 현상과 일상을 해석합니다.
스물두 번째 글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진리 개념, 즉 ‘은폐와 드러남(Aletheia)’을 바탕으로
데이터 중심 사회의 ‘투명성 강박’을 다시 바라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가 곧 진리’라고 믿습니다. 숫자가 말하고, 알고리즘이 판단하며, 예측이 곧 사실이 되는 시대.
그러나 하이데거는 진리를 단순한 ‘정확한 정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진리란,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면서 동시에 감추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빅데이터 사회가 어떻게 ‘모든 것을 보이게 하려는 욕망’ 속에서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잃어가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 1. 서론: 데이터가 진리를 대신하는 시대 1.1 데이터 중심주의의 도래 1.2 투명성의 강박과 감시의 윤리 2.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 – ‘은폐와 드러남’의 변증법 2.1 진리의 본질은 ‘드러남’이 아니라 ‘드러남 속의 감춤’ 2.2 존재의 현현과 기술의 간섭 3. 기술시대의 존재망각 3.1 하이데거의 ‘게슈텔(Gestell)’ 개념 3.2 데이터화된 인간: 존재의 자원화 3.3 통계와 알고리즘에 종속된 ‘존재’ 4. 빅데이터 사회의 진리 체계 4.1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4.2 알고리즘의 ‘가시성 이데올로기’ 4.3 투명성의 폭력과 사생활의 소멸 5. 철학적 전환 – 진리를 다시 사유하기 5.1 ‘은폐’를 인정하는 용기 5.2 해석과 관계 속의 진리 5.3 존재론적 사유로서의 데이터 비판 6. 결론: 진리의 빛은 그림자와 함께 온다 |
1. 서론: 데이터가 진리를 대신하는 시대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가 말한다”는 문장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다.
기업은 데이터를 근거로 소비를 예측하고, 정부는 데이터를 통해 사회를 관리하며, 개인은 데이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
모든 현상은 수치로 환원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 결과,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는 환상이 현대 사회를 지배한다.
1.1 데이터 중심주의의 도래
19세기 산업사회가 ‘기계’를 중심으로 했다면, 21세기 사회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데이터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규정하는 새로운 언어다.
우리는 자신을 ‘프로필’, ‘기록’, ‘패턴’으로 정의하며, 진리는 점점 더 ‘정확한 예측값’으로 대체되고 있다.
1.2 투명성의 강박과 감시의 윤리
SNS, 위치 추적, CCTV, 그리고 데이터 분석 시스템은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윤리를 내면화시켰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투명성은 존재의 왜곡이다.
진정한 드러남은 감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 – ‘은폐와 드러남’의 변증법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진리를 “존재의 열림(Aletheia)”이라 정의했다.
그는 진리를 단순히 사실의 정확성으로 이해한 전통적 관념을 비판했다.
2.1 진리의 본질은 ‘드러남’이 아니라 ‘드러남 속의 감춤’
Aletheia는 ‘감추어짐이 해제되는 상태’라는 뜻을 가진다.
진리는 완전한 노출이 아니라, 드러남과 은폐의 공존이다.
빛이 그림자를 전제하듯, 존재는 언제나 자신을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감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를 측정하고 기록하며, ‘완전한 드러남’을 목표로 한다.
2.2 존재의 현현과 기술의 간섭
하이데거는 기술을 ‘존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드러내게 하는 틀(Gestell)’이라 했다.
기술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유용성의 관점에서 강제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삶을 수량화함으로써, 존재를 ‘데이터로 환원된 자원’으로 변형한다.
3. 기술시대의 존재망각
3.1 하이데거의 ‘게슈텔(Gestell)’ 개념
게슈텔은 기술이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기술은 존재를 ‘에너지 자원’, ‘통계적 단위’, ‘활용 가능한 정보’로 본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세계를 ‘살아내는 존재’가 아니라, ‘측정하고 관리하는 존재’로 변한다.
3.2 데이터화된 인간: 존재의 자원화
오늘날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데이터로 변환한다.
걸음 수, 수면 시간, 심박수, 검색 기록—all are data.
이 모든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의 서버에 저장되어 ‘상품’으로 거래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망각”은 바로 이런 상태다.
우리는 존재를 이해하기보다, 측정 가능한 것으로만 인식한다.
3.3 통계와 알고리즘에 종속된 ‘존재’
데이터 사회의 인간은 통계적 존재다.
AI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 연애, 소비, 심지어 사고방식까지 예측한다.
하지만 그 예측은 우리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죠”라는 문장 안에서 스스로를 좁혀 간다.
4. 빅데이터 사회의 진리 체계
4.1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데이터가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데이터는 언제나 수집의 의도와 해석의 틀 속에 존재한다.
수집된 정보는 선택적이며, 해석 과정에서 권력의 관점이 개입된다.
따라서 데이터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신화적 진리 체계다.
4.2 알고리즘의 ‘가시성 이데올로기’
오늘날의 기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환상을 심는다.
그러나 이 가시성은 편향적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계이며, 보지 못하는 것은 ‘무의미한 데이터’로 삭제된다.
진리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의 가능성 속에 있다.
4.3 투명성의 폭력과 사생활의 소멸
‘감시’는 이제 폭력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다.
개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노출한다.
그러나 이 투명성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자유가 아니라, 드러남을 강요받는 타율성이다.
5. 철학적 전환 – 진리를 다시 사유하기
5.1 ‘은폐’를 인정하는 용기
진리는 항상 감춰진다. 그 감춤이 바로 존재의 자유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진리를 ‘완전히 소유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 사회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철학은 알 수 없음 속에서의 사유를 요청한다.
5.2 해석과 관계 속의 진리
진리는 고정된 데이터가 아니라, 해석의 관계 속에서 살아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사람과 세계의 관계적 열림’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데이터 역시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
숫자가 아니라, 맥락과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진리는 드러난다.
5.3 존재론적 사유로서의 데이터 비판
데이터는 존재를 드러내는 한 방식일 뿐, 존재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데이터를 넘어 존재가 드러나는 다양한 방식을 다시 사유하는 것이다.
철학은 데이터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대신, 드러남의 다양성과 감춤의 필요성을 회복시킨다.
6. 결론: 진리의 빛은 그림자와 함께 온다
빅데이터 사회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정, 맥락, 존재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하이데거의 언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드러남의 과잉 속에서 존재를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진리는 단순히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기다릴 수 있는 여백의 태도다.
하이데거가 말한 진리의 빛은 언제나 그림자와 함께 온다.
그림자를 허락할 때, 우리는 다시 존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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