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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cop

21. 감정과 공동체 – 마사 누스바움과 공감의 정치학

by orossiwithu 2025. 10. 28.

[philo+scop] 철학적 개념을 렌즈 삼아 현대사회의 현상과 일상을 해석합니다.

스물한 번째 글은 감정의 철학을 다루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을 통해,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공동체 문제를 살펴봅니다.
우리는 감정을 사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분노는 저항을 낳고, 공감은 연대를 만들며, 무관심은 사회를 붕괴시킵니다.
누스바움은 감정을 이성의 적이 아니라, 도덕적 사고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녀의 사유를 통해 ‘공감의 정치학’이 어떻게 개인의 윤리와 사회 정의를 새롭게 구성하는지 탐구해 봅니다.

1. 서론: 감정의 시대, 그러나 공감의 부재  
   1.1 감정의 사유를 회복하라  
   1.2 누스바움의 문제의식 – 감정은 이성의 적이 아니다  
2. 인지적 감정 이론 – 이성으로서의 감정  
   2.1 감정은 판단이다  
   2.2 감정의 윤리적 기능  
   2.3 공감의 인지 구조  
3. 공감의 정치학 – 정의의 감정적 토대  
   3.1 분노의 재해석: 파괴가 아닌 정의의 신호  
   3.2 사랑의 확장: 사적 감정에서 공적 감정으로  
   3.3 공감 없는 정의는 공허하다  
4. 감정의 왜곡 – 혐오, 냉소, 무감정의 시대  
   4.1 혐오의 감정정치  
   4.2 냉소의 문화  
   4.3 무감정의 위험  
5. 감정과 정의 – 공감의 교육  
   5.1 감정의 배움  
   5.2 예술과 공감의 힘  
   5.3 민주주의의 정서적 토대  
6. 결론: 이성의 사회에서 감정의 정치로

1. 서론: 감정의 시대, 그러나 공감의 부재

감정은 종종 사적인 감정 표현이나 일시적 정동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은 감정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 선거의 결과, 사회적 갈등, 연대의 탄생에는 언제나 감정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정을 ‘이성의 방해물’로 오해한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그녀에게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한 인지적 판단이다. 즉, 감정은 이성이 느끼는 가치의 언어다.

1.1 감정의 사유를 회복하라

고대 철학자 스토아학파는 감정을 억제해야 할 비이성적 충동으로 보았지만, 누스바움은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인간의 취약성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도덕적 판단의 출발점이다.

1.2 누스바움의 문제의식 – 감정은 이성의 적이 아니다

그녀는 “감정은 세계를 평가하는 판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슬퍼하는 이유는, 어떤 것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정의를 바라는지 드러낸다. 감정이 없다면 도덕도, 정치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


2. 인지적 감정 이론 – 이성으로서의 감정

2.1 감정은 판단이다

누스바움은 감정을 “어떤 대상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할 때 생기는 판단적 반응”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위협’을, 사랑은 ‘의미’를, 분노는 ‘부정의’를 인식할 때 생긴다.
즉, 감정은 무의식적 본능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인지적 행위다.

2.2 감정의 윤리적 기능

감정은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통로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고, 잃기 때문에 슬퍼한다. 누스바움은 이를 “인간성의 근본 조건”이라 부른다. 이 조건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냉소로 흘러간다.

2.3 공감의 인지 구조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공감을 인지적 재구성이라 본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입장에 서고, 그가 느꼈을 세계를 잠시 빌려 살아본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의 훈련이다.


3. 공감의 정치학 – 정의의 감정적 토대

3.1 분노의 재해석: 파괴가 아닌 정의의 신호

누스바움은 『Anger and Forgiveness』에서 분노를 단순히 해로운 감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녀는 분노를 정의의 부재를 인식하는 감정적 신호로 이해한다.
분노는 복수의 충동이 아니라, 잘못된 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윤리적 에너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의로 전환하는 지혜다.

3.2 사랑의 확장: 사적 감정에서 공적 감정으로

『Political Emotions』에서 누스바움은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적 사랑(public love) 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랑은 개인 간의 애정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느끼는 정서적 유대다.
시민 교육, 예술, 문학, 축제와 같은 공적 장치는 이러한 감정을 형성하고 확장시킨다.
결국 정치적 연대는 이성적 합의보다 감정적 신뢰에서 시작된다.

3.3 공감 없는 정의는 공허하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정의롭지 않다.
누스바움은 “정의는 감정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합리적 제도만큼이나,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감정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4. 감정의 왜곡 – 혐오, 냉소, 무감정의 시대

4.1 혐오의 감정정치

누스바움은 현대 정치에서 ‘혐오’가 가장 위험한 감정이라고 지적한다.
혐오는 타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경계를 닫는다.
이 감정은 공포와 결합해 배제의 정치를 낳는다.

4.2 냉소의 문화

냉소는 감정의 소진이다. 타인의 고통에 “어차피 세상은 다 그래”라고 반응할 때, 사회는 감정적 공명을 잃는다. 냉소는 스스로를 지켜주는 듯하지만, 사실은 공감 능력을 마비시킨다.

4.3 무감정의 위험

무감정은 폭력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을 삭제함으로써,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공감의 결핍은 윤리의 결핍으로 이어진다.


5. 감정과 정의 – 공감의 교육

5.1 감정의 배움

누스바움은 감정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학교, 가정, 미디어는 감정의 형성과 왜곡을 동시에 주도한다.
따라서 감정 교육은 단지 예절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5.2 예술과 공감의 힘

문학, 영화, 음악은 타인의 삶을 경험하게 만드는 최고의 도구다.
예술은 우리를 낯선 타자의 세계로 데려가며, 그를 이해하고 느끼게 한다.
누스바움에게 예술은 공감의 훈련장이자, 정의의 감정적 토양이다.

5.3 민주주의의 정서적 토대

민주주의는 이성의 합의 위에만 세워질 수 없다.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정적 연결이 필요하다.
공감, 연민, 사랑은 단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만큼 중요한 정치적 감정이다.


6. 결론: 이성의 사회에서 감정의 정치로

감정은 약점이 아니라, 인간성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누스바움은 감정을 공공의 영역으로 다시 불러내며, 정치적 감정의 철학을 세운다.
그녀가 말하는 공감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기 문제로 느끼는 능력이다.

이성의 사회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감정이 사라진 곳에서는 정의도 공존도 가능하지 않다.
공감은 개인의 덕목이 아니라,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누스바움의 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이성이 사회를 세운다면, 감정은 그 사회를 지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