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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logue

17.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by orossiwithu 2025. 10. 18.

 

[ scene+logue ]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열일곱 번째 장면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격랑 속,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시대. 사랑은 떠나가고, 집은 폐허가 되었으며, 자신을 지탱하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에도 스칼렛 오하라는 마지막까지 속삭입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래도, 내일은 또 오니까.)
절망과 상실 속에서도 내일을 말할 수 있는 힘. 그 힘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살아가려는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장면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 무너짐 뒤에 찾아오는 내일

 

1. 프롤로그 (Scene Drop)

저택의 계단에 홀로 선 스칼렛.
그녀가 쫓던 사랑은 이미 떠났고, 손에 쥔 모든 건 무너져 버렸습니다.
전쟁이 남긴 건, 불타버린 집과 메마른 땅, 그리고 버티기 힘든 고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속삭입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래도, 내일은 또 다른 날이야.)

 

이 말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닙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너졌다는 것을.
하지만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붙잡습니다.
그 믿음이 그녀를 다시 세우고, 다시 걷게 만듭니다.


2. 정지화면 (Freeze Frame)

만약 이 장면을 멈춰 놓는다면, 화면 속 스칼렛은 분명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눈빛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반짝입니다.
사랑도, 재산도, 꿈도 잃었지만 그녀의 영혼만은 완전히 패배하지 않은 얼굴.

 

카메라는 그녀를 패배자가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남깁니다.
그녀의 눈빛은 무너진 오늘을 바라보면서도, 다가올 내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모순된 시선 속에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무너짐 속에서도, 인간은 늘 내일을 향한다는 것.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어쨌든,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이 대사는 단순히 영화 속 마지막 대사가 아니라, 삶을 버티는 주문처럼 다가옵니다.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내일은 또 다른 날.”
우리가 힘들 때, 이 문장은 마음속에 은은한 울림을 남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합니다.
사랑에 상처받고, 꿈을 놓치고, 때론 삶의 무게 앞에 주저앉습니다.
그럴 때면, 모든 게 끝이라고 느끼죠.

 

하지만 새벽은 늘 찾아옵니다.
그리고 내일은, 어김없이 시작됩니다.

 

스칼렛의 말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그녀는 사랑을 잃었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내일은 선택의 가능성이자, 살아갈 또 다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같은 순간을 압니다.
“오늘은 끝났다”라고 느끼지만, 다음 날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쉽니다.
그 자체가 기적이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그 말은 단순히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고백입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푸코의 시각으로 보면, 스칼렛의 선언은 권력과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힘이 그녀의 삶을 파괴했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 다른 언어를 꺼냅니다.
“내일”이라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시간을 자기 것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라캉의 언어로 본다면, 내일은 결핍을 견디게 하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오늘의 상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내일이라는 상징이 주체를 살아가게 합니다.
결핍은 존재의 구조이고, 내일은 그 결핍을 안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버팀목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정수입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도, 내일은 주어집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인간을 버티게 하고, 살아가게 합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래도, 내일은 또 오지 않겠는가.)
이 말은 회복이 아니라, 지속의 언어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5. 여운 (Aftertaste)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은 잔혹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떠났고, 삶은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건 내일이라는 이름의 희망입니다.

 

스칼렛은 더 이상 과거를 붙잡지 않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무너진 오늘이 아니라, 다가올 내일을 향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지금도 들려옵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삶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너지고, 잃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또 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주문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말은 오래 남습니다.
오늘이 아무리 무너져도, 내일은 반드시 다시 온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마치 라디오의 마지막 곡처럼, 조용히 우리 마음에 스며듭니다.
끝내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내일은 다시 열릴 거라고.
우리가 무너져도, 내일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