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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logue

12. “If there’s any kind of magic” – 비포 선라이즈(1995)

by orossiwithu 2025. 10. 5.

[ scene+logue ]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열두 번째 장면은,  영화 < Before Sunrise (1995)> 입니다. 

제시가 말합니다.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이 세상에 어떤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있을 거야.)
낯선 기차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단 하루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인간의 깊은 본질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 장면에 머물러 보려 합니다.

 

“If there’s any kind of magic” – 순간의 마법 

1. 프롤로그 (Scene Drop)

비엔나행 기차 안, 미국 청년 제시와 프랑스 여학생 셀린은 우연히 마주칩니다.
처음엔 짧은 대화였지만, 서로의 눈빛은 묘한 끌림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제시는 과감히 제안합니다.
“내일 아침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 그런데 오늘 밤을 너와 보내고 싶어. 그냥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자.”

 

셀린은 망설이지만 결국 그의 손을 잡습니다.
그 순간부터 둘의 하루는 마법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도시를 걸으며 철학과 사랑, 정치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낯선 풍경은 배경이 되고, 대화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제시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이 세상에 어떤 마법이 있다면…).

 

그의 말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마법은 신비한 힘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만남’의 본질을 포착합니다.


2. 정지화면 (Freeze Frame)

이 장면을 정지화면처럼 붙잡아 보면,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전환도 없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이 강렬합니다.
낯선 두 사람이 단 하루 만에, 서로의 마음 가장 깊은 부분을 열어 보입니다.
상처와 불안, 희망과 환상을 숨기지 않고 나눕니다.

 

비엔나의 야경과 좁은 골목, 카페의 테이블, 강가의 벤치.
어느 장면을 멈춰 세워도 그 속에는 진심 어린 대화가 있습니다.
마치 관객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는 착각이 듭니다.

 

정지된 순간 속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는 것을.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마법은 이해 속에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경험을 되새기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나를 판단하지 않고 바라봐주는 시선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무게가 인정받는다고 느낍니다.

 

사랑도 결국 이해의 반복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과 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려는 노력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투고 오해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시도가 관계를 이어갑니다.

 

제시와 셀린의 하루는 사랑의 압축판입니다.
그들은 단 하루 동안 수년간의 관계에서나 나눌 수 있는 깊이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마법이었습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이 대사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사유와 겹쳐 읽힙니다.
부버는 인간이 진정한 만남을 경험할 때, 상대를 ‘그것(It)’이 아닌 ‘너(Thou)’로 만난다고 했습니다.
즉, 도구나 대상이 아닌 한 존재로 마주할 때, 관계는 진실해진다는 것입니다.

 

〈비포 선라이즈〉는 바로 이 ‘나-너’의 순간을 영화로 기록합니다.
제시와 셀린은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루의 시간 속에서, 온전히 한 인간으로 마주합니다.
그 만남은 반복되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대안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의 삶에 지쳐,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합니다.
한순간의 대화가,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다고.


5. 여운 (Aftertaste)

영화의 마지막, 둘은 기차역에서 헤어집니다.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고, 다시 만날 확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이 세상에 어떤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있을 거야.)

이 말은 단순히 제시의 고백이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마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 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라디오의 마지막 곡처럼, 이 대사는 마음속에서 반복됩니다.
“마법은 이해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여전히, 
우리를 사람 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