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cene+logue

9. “The unbearable lightness”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by orossiwithu 2025. 9. 30.

[scene+logue] 스쳐간 장면에 머물러, 마음에 스민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홉 번째 장면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입니다.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삶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 밀란 쿤데라는 이 단순하면서도 무겁고, 동시에 가벼운 문장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모든 것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기에, 그 어떤 것도 반복되지 않고 결국 사라지기에 삶은 또 가볍습니다. 우리는 무게와 가벼움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짓눌린 채 살아갑니다. 오늘은, 그 모순의 문장 속에 머물러 보려 합니다.

“The unbearable lightness” – 가벼움의 무게를 견디다

1. 프롤로그 (Scene Drop)

 

쿤데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두 축으로 풀어냅니다.
만약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선택은 끝없이 무거울 겁니다.
반대로 단 한 번뿐이라면, 그 모든 선택은 비교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덧없는 가벼움으로 사라집니다.

 

소설 속 토마시는 이 역설을 살아내는 인물입니다.
그는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유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테레자라는 한 여인의 무게를 떨쳐낼 수 없습니다.
자유와 속박, 가벼움과 무거움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삶.

 

이 프롤로그는 마치 카메라가 도시의 한 장면을 천천히 훑으며,
그 속에 살아가는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화려하고 자유로운 삶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숨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언제나 두 가지 사이에서 머뭇거립니다.
무겁게 살 것인가, 가볍게 살 것인가.
그리고 답은 늘, 두 가지를 동시에 끌어안은 채 흔들리며 사는 것뿐입니다.


2. 정지화면 (Freeze Frame)

토마시가 테레자와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다른 여성들을 찾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컷처럼 선명하게 남습니다.
그는 사랑을 느끼면서도 자유를 갈망하고,
무게를 원하면서도 가벼움을 버리지 못합니다.

 

정지화면처럼 멈춰 세워 보면, 그 장면은 단순한 불륜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양가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의미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의미 없음 속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무겁게 짊어진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으면서도,
언제든 가볍게 흩어지고 싶은 충동을 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직장, 가족, 사랑, 우정… 우리는 늘 무게와 가벼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어떤 선택은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힘들고,
어떤 선택은 너무 가벼워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3. 내면의 메아리 (Inner Echo)

“삶은 단 한 번뿐이다.”
이 말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듣는 순간 우리의 내면을 울립니다.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매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어떤 장면들을 떠올리면,
그때는 사소하다고 여겼던 순간이 지금은 무게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무겁게 짊어졌던 일들이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때는 울고 웃으며 힘겨웠지만, 돌이켜보면 가볍게 흘러간 일들.

 

쿤데라의 문장은 이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했던 순간이 반드시 무거운 것은 아니며,
가볍다고 여겼던 순간이 오히려 평생을 흔드는 무게가 되기도 합니다.

 

삶의 메아리는 늘 이렇게 불규칙합니다.
가벼움이 무게로 돌아오고, 무게가 가벼움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4. 겹쳐 읽기 (Cross Reading)

쿤데라의 사유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자주 대비됩니다.
니체는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될 거라 했습니다.
반면 쿤데라는 반복되지 않기에 삶은 가볍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야말로 오히려 참을 수 없는 무게가 됩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이 구절은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확실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동시에 더 치열하게 살도록 이끕니다.

 

다른 작품들과 겹쳐 읽으면 더 풍부해집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끊을 수 없는 사랑,
〈이터널 선샤인〉에서 지워도 남는 기억,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을 넘어 닿는 마음.
이 모든 장면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역설’을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기억, 시간과 욕망 모두 가볍고도 무겁습니다.

 

쿤데라의 문장은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예술적·철학적 질문을 하나로 모읍니다.
“삶은 가볍지만, 그 가벼움은 무게가 된다.”


5. 여운 (Aftertaste)

책을 덮고 나면, 쿤데라의 문장은 라디오의 마지막 곡처럼 오래 남습니다.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삶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속박을 찾고,
가벼움을 두려워하면서도 무게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 모순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제 삶의 장면들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무겁다고 믿은 사건이 사실은 덧없는 가벼움이었던 순간,
가볍다고 여겼던 선택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무게로 남은 순간.
그 모든 장면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삶은 단 한 번뿐이기에 무겁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뿐이기에 가볍습니다.
그 모순을 껴안는 것이,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가볍게 스쳐간 일, 짓눌리듯 무겁게 남은 일.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단 한 번뿐인 삶의 무늬가 되어,
우리를 지금 여기로 이끌어온 것은 아닐까요.